■ 비판적 사고
비판적 사고란 건전한 추론 및 논증과 그 검증을 할 수 있는 판단능력입니다.*

건전함: 연역추리에서 전제가 모두 참이라고 가정할 때, 그 구조상 참인 결론이 도출된다면 "타당하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때 전제의 명제가 실제로 모두 참이면 "건전하다"라고 합니다.
추론: 주어진 전제로부터 참인 결론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논증: 주장(결론)을 입증하기 위해 근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타당하고 참인 전제나, 결론을 강화하는 증거가 근거가 됩니다.
연역에 있어서 추론과 논증을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다만 그 사용에 있어서 추론은 결론의 도출을, 논증은 전제의 구성에 방점을 둡니다.
연역: "어떤 명제로부터 추론 규칙에 따라 결론을 이끌어 냄." 어떤 명제가 참일 때 반드시 참인 명제를 도출하는 것을 연역, 연역추리라고 합니다. 전건긍정, 후건부정, 삼단논법이 대표적입니다.
[전건긍정]
A -> B
A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B
[후건부정]
A -> B
-B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A
[삼단논법]
A -> B
B -> C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A -> C

연역은 결론이 100% 참임을 보장하지만, 잠재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알아차리게 할 뿐 새로운 지식을 산출하지는 않습니다.
명제: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문장.
수학교육과 달리 "백두산은 높다" 이런 문장도 명제입니다. "높다"의 정의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비연역추리: 연역이 아닌 모든 추측을 비연역추리라고 합니다. 개연적인 확실성만을 가집니다. 특수사실로부터 일반명제를 유도하는 귀납추리, 두 개의 사물이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다른 속성도 유사할 것이라고 추론하는 유비추리, 현상과 특히 그 원인을 설명하는 가설을 제안하는 가설추리가 있습니다.

입증: 학문분야에서는 주장이 참일 가능성을 올리면 입증(강화), 내리면 반입증(약화)이라고 합니다. 증명과 구별하여 사용합니다.

비판적 사고: 합리적인 업무처리와 대부분의 학문연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근간이 되는 방법이 비판적 사고입니다. 비판적 사고를 갖고서 자연을 연구하면 과학, 유물•문헌 등 사료를 연구하면 역사학, 성서와 교리를 연구하면 신학이 됩니다.
■ 신학에서 논리와 비판적 사고의 사용법
논리와 비판적사고는 교리의 확장 및 검증, 성서기술의 사실성과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필요합니다.
1. 교리의 확장과 귀류법
연역추리는 교리학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교리는 명제로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명제는 스스로, 또는 다른 유관한 명제와 전제를 구성하여 새로운 명제를 산출합니다. 이를테면
1. 인간은 죄인이다
2. 인간은 자력으로는 죄를 씻을 수 없다.
3. 세상의 어떤 피조물도 죄를 사해줄 수 없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인간의 죄를 사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만 달려있다
(루터의 칭의론 교리)
1.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달려있다
2. 하나님은 전지전능하고 미래를 바꾸지 않으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구원 받는 사람은 예정되어있다
(칼빈의 예정론 교리)
1. 영혼이 존재한다
2. 사후에도 영혼은 불멸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영혼이 사후에도 어딘가 존재한다
(사후세계 교리)
이런 연역추리가 가능하지요. 이런 걸 깨달음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리가 확장됩니다. A교리가 참일 때 연역되는 명제B도 (교리서에 적혀있지 않더라도) 교리가 되고, B에서 연역되는 C도 교리가 되지요.
A -> B -> C -> D 라고 할 때
BUT! -D가 확실하다면
-D -> -C -> -B -> -A
그러다 D까지 왔는데 만일 D가 확실히 거짓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A,B,C,D가 전부 거짓이었던 것이 증명됩니다. 후건부정을 이용한 것인데, 이러한 검증방법을 귀류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귀류법은 국어사전상 "명제의 부정을 가정하여 그것의 불합리성을 드러내어 명제의 참을 증명하는 간접증명법"이지만 그 본질은 "연역의 연쇄를 이루고 있는 명제들이 모순으로 귀결되면 전부 거짓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즉 귀류법의 일차적 쓸모는 명제가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이고, 간접증명은 그 응용입니다.
예를 보겠습니다
A: 신은 전능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B: 신은 네모난 원을 만들 수 있다
라는 논증이 있을 때
"네모난 원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A는 거짓으로 증명됩니다.
그럼 이제 교리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신은 궁극적이고 철학적인 의미에서 전능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고 계시다" 정도로 말이지요.
2. 강화/약화와 성서기술의 사실성
교리는 주로 연역의 영역에 있지만 성서학은 비연역추리를 이용할 때가 많습니다. 가령 성서의 사실성을 검증하는 건 가설추리의 영역에 있고, 증거가 가설을 강화/약화하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시1) 출애굽 15세기 vs 13세기
"출애굽은 15세기에 일어났다"라는 가설A가 있습니다. 이 가설은 열왕기상 6:1의 "솔로몬 재위 4년에 시작된 성전건축은 출애굽 480년 후"라는 진술에 따른 것입니다. 975+480=1455
그러나 "요셉이 현실적으로 고위관료가 될 가능성이 있는 시기는 셈족인 힉소스왕조(1650-1550)뿐인데, 15세기에 탈출했다면 일족 70명이 파라오가 두려워할 정도로 늘어나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는 반론은 가설을 약화합니다.

"13세기 이집트의 메르넵타 석비에서 이스라엘을 언급할 때 나라가 아니라 민족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15세기 설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미 국가형성이 되어있어야 하므로 서로 충돌한다"라는 반론도 가설을 약화시킵니다.
한편 성서학자들은 열왕기상에서 "왜 480년이라고 했을까"를 설명할 가설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480년은 1세대를 40년으로 잡은 뒤 12대를 곱하면 나오는 수라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40을 상징적인 수라고 보았습니다(모세 수명 120세, 광야세대교체 40년 등). 다른 역본에서 440년이라고 기술한 것은 이 가설을 강화합니다.
한편 12대는 족보로 쉽게 기록할 수 있으므로 신빙성 있는 숫자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40년이라는 비현실적인 숫자를 25년으로 조정하면 480년이 아니라 300년이 산출됩니다. 975-300=1275이므로 출애굽은 13세기라는 가설B를 세워두고 검증해봅니다.
힉소스왕조 17~16세기 이집트에 들어와 13세기에 탈출했다면 인구증가가 조금은 더 잘 설명됩니다. 가설B가 약간 강화됩니다.
성서의 "요셉을 모르는 왕" 진술은 힉소스 왕조에서 이집트 본토인 왕조로의 교체와 부합합니다. 가설이 강화됩니다.
메르넵타 석비(1210년)의 언급이 자연스러워집니다. 강화됩니다.
이상의 이유로 학계에서는 13세기설이 다수설이 되었습니다.
예시2) 여리고와 나팔
"나팔을 부니 여리고 성벽이 무너졌다는 기술은 사실이다"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나팔을 분다고 성벽이 무너질 리 없다는 상식은 가설을 약화합니다.
반면 "고유진동수를 맞춰서 공진시키면 거대인공물도 크게 흔들리게 해서 손상시킬 수 있다"라는 설명은 가설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그건 철근이나 케이블로 만드는 다리 같은 데나 해당하는 것이지 돌과 흙으로 짓는 성벽과는 무관하다"는 반론은 가설을 약화합니다.
가나안 정복전쟁 당시 여리고는 폐허였고 요새화되어있지도 않았다는 발굴결과는 가설을 크게 약화합니다.
학자들은 성서기자가 해당본문을 쓸 때 여리고가 요새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혹은 바빌론 침공 전에 요새였단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대착오(나쁜 말이 아닙니다)를 일으킨 뜻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3. 성서 저자의 의도 파악하기
성서해석의 목적은 저자의 의도를 가능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때 저자의 의도는 과학으로 치면 학자들이 밝혀내야하는 자연법칙이나 진리와 같은 것이고 해석은 그걸 설명하는 이론 및 가설이 됩니다.
하나의 본문에 대해서 여러 개의 해석이 있을 수 있고, 그중 경쟁가설을 제치고 가장 많이 강화되면 다수설이 되어 표준해석으로 자리 잡고 주석서에도 가장 비중 있게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탕자의 비유의 주제는 죄인에 대한 회개의 촉구다"라는 해석A가 과거에는 다수설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비유의 주제는 죄인이 회개했을 때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하고, 회개한 사람을 과거로 책잡지 말라는 것이다"라는 해석B가 등장합니다.
이때 해당 비유가 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첫째 아들에 대한 훈계로 끝난다는 사실은, 이야기의 목표 청중이 죄인이 아니라 스스로 경건하다고 여기는 자들이라고 보는 B해석을 강화합니다.
또한 이 비유는 잃은 양의 비유, 되찾은 드라크마의 비유와 함께 나오는데 위 두 비유에선 회개라고 할만한 묘사가 없다는 사실, 반대로 기쁨이라는 단어는 5번 등장한다는 사실, 탕자비유의 마지막 훈계에서도 기쁨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사실은 세 비유의 공통된 주제의식을 보여주며 B를 강화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비유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 먹는 것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라는 사실은 B를 강화하고 A를 약화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A, B해석을 모두 아는 사람은 통상 B로 해석하고 또 그렇게 설교합니다.
■ 기독교인에게 논리와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
다른 생각, 문화, 배경,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논리는 언어 사용자라면 받아들여야만하는 바른 생각의 방식이고 사고의 공용어입니다(앞뒤 안맞는 말을 하는 사람도 논증을 하는 척 애를 쓰고, 논리를 싫어하는 사람조차 "논리는 틀렸다"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예방합니다.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한번 수용한 신념과 양립할 수 없는 견해나 정보와 맞닥뜨리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논리와 비판적 사고를 훈련하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그럴 일이 적어집니다.

반지성주의와 기독교를 분리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신앙을 가지려면 논리와 과학적 사고 및 지식을 얼마간 포기해야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쪽으론 기독교를 폄하하는 분들이 있고, 다른 한쪽으론 과학을 거부하는 분들도 있죠. 그러나 현대 신학계는 과학적 사실이나 논리와 모순되는 입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타 학문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습니다.**

물론 반지성적 기독교인도 꽤 많고 그런 사람들이 주류인 교회•교단도 있죠. 그런 곳을 분별하고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논리와 비판적 사고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지혜로운 의사결정과 하나님나라운동의 효율적인 실천에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무언가를 정할 때 모순과 비약이 많은 의견이 채택되면 안 되겠죠? 늘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을 택해야하고 그 목적이 훌륭한 것인지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나라운동과 효율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운동은 비효율적이어야 하는가?"라고 질문한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운동은 결국 세상의 고통을 얼마나 줄이는가, 기독교를 얼마나 전파시키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간과 자원은 한정적이죠. 같은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서 가능한 많이 고통을 줄이고 기독교인을 늘리는 것이 기독교인의 역할입니다.

가령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분들은 병원, 대학을 짓는데 많은 자원을 투입했습니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생명을 건졌고, 가난을 벗어났으며,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커다란 예배당만 지어 놓았다면 한국의 기독교가 지금과 같았을까요?
따라서 논리와 비판적 사고, 즉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개인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섬길 때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 해당 책은 김광수, <논리와 비판적 사고>, 철학과현실사.
**몇 개 기사 링크를 걸어둡니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16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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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christiantoday.co.kr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11060
종교와 과학,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부산·서울·군산서 강의
www.newsnjoy.or.kr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27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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